3월 5일 독서일지
첫 <책과 나> 모임에서는 세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1. <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고래 발행, 정서경 서유미 홍한별 임소연 장하원 전유진 박재연 엄지혜 이설아 김희진 서수연 저.
읽던 책인데 이번에 완독했습니다.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에세이 모음집이에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임출육에 관해 모두가 한목소리로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이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모유 수유에 대한 신성함 혹은 낭만과 달리, 젖이 도는 느낌이 끔찍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아이를 낳는 것은 내가 겪어본 것 중 가장 큰 성취감을 안겨주는 일'이었다고 말해요.
다 읽고 든 생각은.... 그 세계를 미리 알고 싶어서 읽은 책인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스포당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 허허. 저는 그냥 제 방식대로, 제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막상 출산 육아가 현실이 되었을 때 몸소 경험하고 싶은가 봐요. 이런 류의 글은 더 찾아 읽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2. <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을유문화사 발행, 토마스 기르스트 저 / 이덕임 역.
읽던 책이라 완독하고 싶어서 챙겼는데, 이번에도 완독 못 한 책입니다.
저는 평소에 몸보다 머리가 더 빨리 움직이는 편이에요. 육감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바로 실행에 옮기기보다 '이걸 하면 뭐가 좋지?' '이거 어떻게 엮어서 세상에 내보이지?' 하는 계획을 선행해요.(그렇게 생겨먹은 건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사회화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효율, 쓸모, 의미. 이런 것들에 집착하다가 놓치는 게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이 책처럼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 말하는 콘텐츠에 늘 손이 가요. 이 책은 인물,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시간 자체가 자산이 된 사례'를 모아둔 아카이빙 책이에요. 각각의 사례를 깊게 파고들진 않지만, 사례의 양으로 저를 공격하는 느낌.(정신 차려! 어차피 네가 하는 일의 의미를 지금 알 순 없어!)
근데 또 사례 모음집이라 좀 지루한 감도 있어요. 그래서 더 읽다가 잠시 덮고, 또 다음 책으로 넘어갔습니다. 천천히 완독하면 될 것 같아요.
20세기에 작가 수잔 에르츠는 "비 오는 일요일 오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불멸을 추구한다"고 썼다. (p.83)
"할 말이 많다면 일단 침묵을 지켜야 한다. 번갯불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구름으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 지나치게 작품을 빨리 만들고 전시하려는 예술가들에게 저 니체의 말을 속삭여 주고 싶다. 젊은 예술가 중 극소수만이 성스러운 작업실에서의 고요한 실패와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의 관심과 영광을 맞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p.100)
3.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안목 발행, 필립 퍼키스 저 / 박태희 역.
이번 모임에서 새로 읽기 시작했고 아직 완독 전입니다.
최근에 작은배에서 진행한 <컬렉트, 프린트, 프레임>이라는 워크숍이 있어요. 영민 작가님이 진행해 주셨는데, 일상적인 공간을 산책하며 새로운 눈으로 장면과 물건을 수집하고, 수집물을 활용해 콜라주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 내내 '제대로 본다는 건 뭘까' 생각했어요. 산책한 동네가 작업실 근처였는데, 영민 님의 가이드에 따라 돌아다니다 보니 평소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와 나 완전 눈뜬장님이었네' 머리를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사물 그 자체.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 (p.18)
이 책의 저자는 사진작가이자 교육자인데요. 사진을 찍고 싶다면 '그냥 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엄청 강조하더라고요?(이런 지점에서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에 제 안에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판단하지 말고 행동하라...) 보는 법을 익혀서, 제 일상을 특별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사진 작업을 해볼 마음은 없지만, 그리기 산책하기 쓰기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했고요. 그리고 제가 유난히 사진 감상에 약한데(뭘 느껴야 할지 당최 모르겠음) 이 책을 읽으며 사진의 미학에 관해 좀 더 알게 됐어요.
책 중간중간에 숙제와 활동이 제시되어 있는데, 사진이 아니더라도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수행해 볼만하다 싶었습니다.
사진의 이미지란 결코 창작물이 아니며, 무지개나 우박처럼 오히려 어떤 식으로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