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Ko

나만의 스트레스 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이 안 된다... 싶을 때 나는 침대로 간다. 그곳에는 늠름한 고양이 한 마리가 스핑크스처럼 앉아 있다. 폭신하고 하얀 이불 정중앙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쫑까. 그 모습이 마치 구름 위에 누워있는 신선 같다. ‘왔느냐?’하는 표정으로 쫑까가 반쯤 눈을 뜬 채 나를 정확히 쳐다보면,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죽겠어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쫑까를 껴안으며 그의 뱃살에 얼굴을 파묻는다. 갈색과 검은색이 점박이처럼 박힌 고등어 무늬, 그 와중에 난데없이 새하얀 배와 턱. 쫑까는 태어나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목욕해 본 적 없다. 그런데 이렇게 포근하고 부드러운 털을 가졌다니. 얼굴을 묻은 채로 한 손으로 쫑까의 얼굴을 쓰다듬으면, 기분 좋은 갸르릉 소리가 쫑까의 몸을 타고 내 몸까지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쫑까의 어디를 만져야 갸르릉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지 안다. 쫑까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히 구분할 수도 있다. 이렇듯 나와 쫑까는 제법 장단이 맞는 가족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대학에 다니며 자취하던 시절, 고양이를 키우자고 먼저 제안한 건 같이 살던 언니였다. 언니를 따라 쫑까를 처음 데리러 갔던 날, 집에서 한참 떨어진 지하철역 앞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고양이가 있는 장소까지 가는데 작은 차 안에서 사료 냄새가 진동했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인 듯싶었다. 그를 따라 도착한 동물병원 구석 작은 종이상자 안에 아기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삐악거리며 모여있었다. 어미가 버리고 간 남매 새끼들이라고 했다. 원하는 아이를 골라 데려가라는 말에 언니와 나는 조금 당황했고, 어둑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상태로 손에 가장 먼저 잡힌 고양이를 들어 올려 미리 챙겨간 캐리어에 옮겼다.
그게 바로 쫑까였다.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내내 삐악삐악 우는 바람에, 기사님은 고양이가 아니라 병아리인 줄 알았다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캐리어에서 풀어주니 잠시 옷장 옆에 숨었다가, 금세 나와서 온 집안을 기어다니며 울었다. 젖은 뗐다지만 아직 두 손안에 폭 들어올 정도로 몸집이 작았다. 이 작은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우렁찬 태도로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했다.

문제는 쫑까가 그날부터 매일 그렇게 울었다는 것이다. 수컷 고양이다 보니 처음엔 중성화를 하지 않아서 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크고 중성화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쫑까는 밤마다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이렇게 말 많은 고양이는 처음 봐’라며 혀를 찼다. 언니가 해외로 유학을 가면서 내가 쫑까를 완전히 맡아서 키우게 된 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는데, 밤마다 쫑까가 우는 소리 때문에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밥을 같아주고, 화장실을 새로 치우고, 장난감으로 놀아줘도, 새벽마다 반복되는 그의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심한 날에는 그냥 나도 같이 울어 버렸다. 지금의 남편이자 당시 남자 친구였던 민석은 ‘중성화 수술이 잘 안된 거 아니야?’라며 쫑까의 뽕알을 계속 확인했을 정도였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쫑까와의 갈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느슨해져 갔다. 결혼하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퇴근 시간이 이른 곳으로 이직했을 때, 회사를 그만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시작했을 때. 조금씩 쫑까의 울음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제야 좁은 집에서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쫑까가 외로워서 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밥, 물, 간식으로도 달랠 수 없었던 쫑까의 억울함. 그걸 풀 수 있는 건 내가 그에게 내어주는 곁과 시간뿐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다행히 쫑까는, 우리의 격전 시절을 나만큼이나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내가 쫑까라면 나를 용서하지 않고 평생 쌩깔 텐데, 쫑까는 언제나 나에게 곁을 내어준다. 심지어 새벽마다 울던 그 시절에도 그랬다. 남자 친구에게 차이고 술에 취해 어슬렁어슬렁 자취방으로 기어들어 갔던 날,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에 미래가 암흑처럼 막막했던 취업 준비생 시절, 소득이 부족해서 전세보증금 대출조차 거절당하고 우울에 빠진 날. 나는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쫑까에게 다가가 그의 뱃살에 기댔다. 폭신한 털에 얼굴을 파묻으면 눈물이 멎었고, 그의 뱃살을 스트레스 볼처럼 주무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십대 였던 내 마음이 바닥을 기고, 하늘을 날고, 갈 곳 없이 쭈글거리던 모든 순간을 쫑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했다. 볼 것 못 볼 것 다 봐 놓고도 쫑까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언제나 나에게 곁을 내어줬다. 물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 수 있지만.

나는 오늘도 쫑까의 뱃살에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쫑까는 귀찮다고 울면서도 가만히 있다가, 이내 ‘기분이 참 좋구나’ 말하는 듯 갸릉갸릉 소리를 낸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쫑까의 뱃살을 주무른다. 운이 좋다면, 쫑까가 나를 핥아줄지도 모르니까. 이내 몸을 일으켜 낮잠을 잘 생각으로 이불 속에 들어간다. 최대한 쫑까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뭐가 그리 불편한지 쫑까는 자리에서 냉큼 일어나고 만다. 나는 쫑까가 미리 데워놓은 침대의 온기가 좋아서 그의 자리까지 냉큼 차지해 버린다. 길 잃은 쫑까는 침대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위로 올라와서 내 곁에 눕는다. 벌린 다리 사이, 옆으로 누웠을 때 무릎이 접히는 뒷부분, 팔뚝과 허리 사이 빈 공간처럼 몸이 꽉 들어맞는 곳을 좋아하는 쫑까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으면, 우리는 딱 맞는 퍼즐 조각처럼 붙어 누운 채로 꿀맛 같은 낮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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