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네 이발소
구글 포토가 ‘4년 전 추억’이라는 알림과 함께 사진 몇 장을 보여줬다. 거기엔 민석의 머리카락이 9mm밖에 되지 않던 시절 모습도 담겨있었다. 사진만 보고 그의 머리 길이가 9mm인 것을 알 수 있던 까닭은, 당시 내가 그의 머리를 직접 바리깡으로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다니던 회사를 모두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제주에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무턱대고 식당을 열겠다며 준비하던 1년의 시간 동안 우리에겐 고정적인 수익이 없었고, 통장 잔고는 끝없이 줄어들기만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절약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었을 때 그중 하나가 민석의 이발비였다. 그날부로 나는 그의 전담 이발사가 됐다. 장비는 쿠팡에서 주문한 삼만 원짜리 바리깡이 전부였다. 화장실 거울 앞에 작은 스툴을 가져다 놓고 민석이 자리에 앉으면 언제든 프라이빗 이발소의 영업이 시작되곤 했다.
“민석아, 이 사진 좀 봐봐. 짧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려.”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석의 얼굴 앞에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밀며 말했다. 민석은 내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게. 꽤 괜찮네. 머리 다시 자를까?”
나는 민석의 흔쾌한 반응 앞에서 흠칫 놀랐다. 최근 몇 년간, 반삭은 다시 하지 않겠다며 혀를 내두르던 민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반삭을 그만두고 머리를 기르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귀찮아서.’ 반삭 스타일을 유지한 1년의 시간 동안 민석은 수많은 어른들의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왜 이렇게 짧게 잘랐니?’ ‘무슨 일 있냐?’ ‘회사는 다시 안 다닐 건가 봐?’ 어른들에게 반삭이란, 저항과 무소속의 상징과 다름없었다.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 삶을 택한 건지 관심은 없어도, 소속 없이 백수로 사는 티를 팍팍 내는 우리를 어른들은 견디지 못했다. 원치 않는 관심에 에둘러 답하는 것조차 귀찮아진 민석은 그냥 긴 머리로 편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반삭이 아닌 머리는 내가 잘라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이후로 수많은 미용실을 전전했고, 결국 도남사우나 남탕에 딸린 작은 이발소에 정착해서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잘랐다. 가격이 저렴하고, 머리를 자르는 내내 사장님이 한 마디도 걸지 않는 데다, 사우나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우나 마니아인 민석에게 이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는 듯 보였다.
그랬던 민석의 마음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오늘 아침, 민석은 수건장 구석에 처박아뒀던 바리깡 파우치를 건네며 내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말했다. 심심했던 차에 할 일이 생긴 나는 신나서 좋다고 답했다.
“어머, 손님.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앉은 민석에게 미용사 흉내를 내며 농담했다. 민석은 웃통을 벗고 잠옷 바지만 입은 채로 허허 웃었다. 한겨울 웃풍이 드는 구옥 빌라의 작은 화장실인지라 민석의 피부에는 오소소 닭살이 돋았지만, 잘린 머리카락이 온 집안에 퍼지도록 둘 수는 없어서 그냥 참으라고 했다. 나는 바리깡에 9mm 탭을 끼우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진짜 깎는다?”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나는 민석의 정수리에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냈다.
머리가 꽤 길었던지라, 전체를 9mm로 반듯하게 미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바리깡이 열심히 움직일수록 민석의 머리 모양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석의 두상은 아주 이쁜 편이다. 이렇게나 반삭이 잘 어울리는데. 머리를 길게 유지해 온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도남사우나에서 이발하면 얼마라고 했지?”
“기본 커트 만 삼천 원.”
“그럼 오늘 그 돈 아꼈으니까 점심에 치킨 시켜 먹자.”
직접 머리를 잘랐을 뿐인데, 돈을 번 기분이 들어 괜히 뿌듯했다.
한때는 민석에게도 커트 한 번에 사만 원씩 하는 한남동 바버샵에서 머리를 깎던 시절이 있었다. 둘 다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덕분에 경제적인 조바심을 느낄 일은 없었다. 우리는 성수동, 망원동, 그리고 가본 적 없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다. 좋아하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디저트를 맛보면서 고리타분한 회사 생활을 잊어버리고자 애썼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인데도, 그 순간들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낯설기만 하다. 이제 우리는 용돈을 없애고, 외식 대신 장을 보고, 바버샵 대신 바리깡을 찾는 삶을 살고 있다. 부쩍 가난하고 지루한 일상이지만 그때 그 시절이 이상하게도 그렇게 그립지가 않다.
나는 곧 9mm 탭을 빼고 6mm 탭으로 갈아 끼웠다. 6mm는 3mm로 한 번 더 짧아졌고, 마지막에는 탭 없이 바리깡과 손목 스냅만으로 멋을 냈다. 탭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민석의 뒤통수에는 깔끔한 회색 그라데이션이 생겼다. 마무리는 면도기였다. 민석의 아래 목덜미에 폼을 바르고 면도를 하니 쓱쓱 하는 소리와 함께 잔털이 밀려 나갔다. 나는 작은 손거울로 민석의 뒤통수를 비추며 물었다.
“어때? 턱도 안 지고, 괜찮지?”
“좋은데? 너무 맘에 들어.”
민석은 거울 앞에서 머리통을 이리저리 굴리며 스타일을 꼼꼼히 확인했다. 내가 봐도 꽤나 괜찮은 이발 실력이었다. 머리를 감을 겸 샤워를 마친 민석의 머리를 한 번 더 체크하는데, 미처 잘리지 않아 삐죽거리는 몇 가닥이 보였다. 어쩔지 고민하다가 끝이 뭉툭한 코털 가위로 하나씩 처리했더니 아주 멀끔한 반삭 스타일이 완성됐다.
“머리 깎은 김에, 나 눈썹 탈색도 하면 어떨 거 같아?”
신나서 묻는 민석에게 나는 네가 좋으면 다 좋다고 답했다. 머리 하나 깎았을 뿐인데, 민석의 표정은 훌쩍 자유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