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수발
오랜만에 부모님과 영화관에 갔다. 얼마 전 엄마가 동창 모임에 다녀왔는데, 어느새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는 그 영화를 자기 빼고 안 본 사람이 없었다며 다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주말 저녁의 영화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1층 매점에서 팝콘과 마실 것을 산 후 상영관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시계를 보니 입장 시간까지는 15분 정도 남아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화장실에 다녀오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출발하기 전에 집에서 다녀왔다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래 놓고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즈음 옆자리에 있는 나를 툭툭 치면서 화장실에 가자고 말할 게 뻔했으니까. “혹시 모르니까 다녀오자. 영화 중간에 나가자고 하지 말고.” 나는 엄마의 답은 듣지 않고 휠체어를 화장실 쪽으로 밀었다.
3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있는 여자 화장실도 아주 좁은 편이어서, 변기 칸 안쪽으로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휠체어 앞바퀴를 변기 칸 입구에 걸치고 문을 활짝 연 채로 느릿느릿 볼일을 봤다. 수치스러울 것도 없이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누가 이쪽으로 가까이 오지 않도록 보초를 서면서도,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게끔 붙잡은 채 엄마가 오줌 누는 모습을 지켜봤다. 엄마의 모든 동작은 느렸다. 엄마가 소변 한 번 보는 동안, 다섯 명도 넘는 사람이 하나 남은 옆 칸을 드나들었다. 겨우 볼일을 끝낸 엄마와 화장실을 나왔더니 벌써 상영관 입장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게 이렇게 진 빠질 일인가 싶었다.
오줌 누는 엄마와 그걸 지켜보는 나. 함께 외출하면 늘 반복되는 장면이다.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된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나는 엄마와 함께 같은 칸에 들어간다. 엄마는 느린 몸으로 휠체어에서 일어나, 변기 앞에서 몸을 돌릴 때 손을 짚을 만한 곳을 살피고, 굼뜨게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오줌을 눈다. 늘 같은 순서지만 화장실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조금씩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오줌을 다 누면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변기 레버가 어디 있는지 찾는다. 레버에 손이 닿질 않는다. 그럼 내가 대신 변기 물을 내려준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팬티와 바지를 올려 입는데, 시간이 부족해 빨리 나가야 하는 날에만 내가 도와준다. 엄마는 손을 씻고 나면 꼭 손에 남은 물을 머리에 묻혀가며 스타일을 살린다. 어쩌다 보니 엄마의 화장실 습관을 모조리 꿰고 있는 나다.
엄마와 가벼운 말다툼을 하게 되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갈등은 보통 별거 아닌 것에 대한 엄마의 잔소리로 시작되는데, 나나 엄마나 고집이 센 편이라 엄마는 말을 멈추지 않고 나는 그걸 계속 무시한다. 그러다 냉랭한 공기가 퍼지더라도 엄마는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자고 내 옆구리를 찌른다. 감정보다 더 솔직한 방광의 명령 앞에서 나는 한숨을 크게 푹 쉬고, 정말 진절머리 난다는 듯 엄마의 휠체어를 빠르게 밀어 화장실로 향한다. 이런 날조차 우리는 같은 칸에서 소변 누는 것을 보여주거나 그 모습을 지켜본다. 카페에서도, 공원 간이 화장실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기분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반복된다. 오줌은 언제 어디서고,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마려운 법이니까. 화장실 수발이 유난히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날에도, 엄마와 화장실에 다녀오는 나를 보며 어른들은 참 착한 딸이라고 칭찬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 화장실 담당은 나 혹은 언니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야 이런 장면이 새삼 난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남편과 한 식당에 갔다가 화장실에 들렀는데, 이미 사람이 있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돼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예상외로 여러 명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내 또래 여자가 어린아이 둘 손을 핸드타월로 연신 닦아대며 분주하게 내 앞을 지나갔다. 그때 나는 임신 16주 차 임산부였다. 뱃속의 아기는 딸이었고, 저게 내 앞날의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연달아 엄마가 생각났다. ‘그럼 엄마 화장실은 어떡하지?’
친정과 가까운 곳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좋겠다고 한다. 애 봐줄 사람,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근처에 있으니 다행이라는 뜻일 테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엄마에게 아기를 선뜻 맡기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집에서조차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데 15분 넘게 걸리는 사람이고, 그동안 아기는 혼자 있어야 할 테니까. 아기와 외출하겠다고 엄마에게 동행을 부탁할 수도 없다. 내 작은 차에 카시트를 설치하고 나면 휠체어 실을 자리가 부족하고, 무엇보다 나는 엄마와 딸 모두의 화장실 수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날 식당 화장실에서 나오는 여자와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가 지금껏 뭔가를 체념하며 살아왔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체념할 일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내가 진짜 효녀라면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을 거다.
엄마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자꾸 넘어진다. 마비된 왼편 무릎이 뒤로 빠져서 힘을 주기가 어려운지, 이제는 심지어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조차 넘어진다. 그중에서도 화장실은 엄마가 가장 자주 넘어지는 곳이다. 지난 리모델링 때 화장실 이곳저곳에 안전바를 달았는데도 그런다. 나이가 들수록 낙상 사고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데. 한 번 크게 잘못 넘어지면 그대로 평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던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엄마를 걱정하는 건지, 나를 걱정하는 건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