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Ko

이기적인 엄마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전날 진행한 피 검사에서 당수치가 경계선을 살짝 넘었다며, 정확한 확인을 위해 재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신성 당뇨가 의심된다는 뜻이었다. 병원에 방문할 일정을 잡고 전화를 끊자마자 순간 짜증이 났다. 속상함도 우울감도 아닌, 분명한 짜증이었다. 소식을 들은 남편은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앞으로 식단 조절하면 괜찮을 거야.” 나는 아무 대답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니 시발,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거지. 하나도 안 괜찮은데.’ 입 밖으로 뱉는 대신 그냥 속으로 말을 삼켰다. 평소라면 내 조급하고 불같은 성미를 가라앉게 도와줬을 남편의 낙천주의도 그날만큼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그 무렵 내게는 괜찮은 게 하나도 없었다. 건강이 문제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임신 25주 차에 배가 많이 나온 편도 아니었고, 체중 관리를 열심히 한 덕분에 부기도 별로 없었다. 물론 잘 때 자세가 불편하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느라 잠을 설치긴 했지만, 낮 시간에 무리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 정신 상태였다. 새해에 접어들고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면서, 내 시계의 시침이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4개월 뒤면 출산이다. 아기를 낳고 난 후에는 일을 얼마나 쉬게 될지 모른다. 지금처럼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점점 더 초조해졌다.

나는 올해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생기면 평소처럼 나중을 기약할 수 없었다. ‘지금 아니면 안 돼. 당장 시작해야 4월 안에 끝낼 수 있어.’ 할 일과 해야 할 일은 점점 쌓여가고 내 머리는 팽팽 돌아가는데, 무거워진 몸뚱아리는 말을 들어먹지 않았다. 조금 무리라도 했다 하면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났다. 심지어 어떤 날은 양쪽 종아리에 동시에 쥐가 나서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야 했다. 다리를 허공에 올리고 버둥거리는 채로 혼자서 몸도 일으키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서러워 울었다. 무능력해질까 봐 무서웠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하고 싶은 일은 못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앞으로는 식단 관리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 먹는다니. 진짜 너무 열받았다.

그날 저녁 쿠팡으로 현미와 병아리콩, 말린 돼지감자를 주문했다. 탄수화물 섭취와 당 흡수를 줄이기 위해 챗지피티와 상담한 결과였다. 재검사에서 정상이 나온다 해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 전문가들에 따르면 임신성 당뇨가 있으면 아기의 폐가 잘 크지 않아서 저산소증이 오거나, 거대아로 클 위험이 있다고 했다. 검사 전날 못 참고 먹은 와플이 생각나 후회가 밀려왔다. 아니, 애초에 살찐 상태로 임신을 한 게 문제였을까. 엄마 아빠 둘 다 당뇨가 있는데, 내 몸에 유전인자가 잠복하고 있던 건가. 임신성 당뇨는 유전이나 환경적 이유가 아니라 호르몬 문제로 생긴다고 하지만, 나를 탓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몸 관리 엉망, 일도 엉망. 다 내가 선택했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재검사받으러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결국 내 짜증은 터지고야 말았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남편과 다퉜다. 사소한 문제였는데. 평소라면 내가 허허 웃으며 봐주고도 백 번은 남는 문제였는데. 렌틸콩과 현미가 가득 들어간 밥을 맛없게 씹어야 했던 시간이 떠올라서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줄지 않는 투두리스트를 앞에 두고 초조해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서러웠다. 그리고 사실 이 모든 게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다 잘 해내겠다고 욕심을 부린 내 탓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슬펐다. 나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면서도, 예약 시간에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병원을 향해 걸었다. 남편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따라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간호사는 나에게 금식 시간을 잘 지켰는지 물어봤다. 재검사는 3시간에 걸쳐 총 네 번의 피를 뽑아 당수치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오는 내내 우느라 코가 막혀서 입안이 바싹 말랐지만, 채혈이 다 끝날 때까지는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첫 번째 채혈을 마치고 간호사가 밖으로 나가자, 대기실에는 나와 남편 두 사람만 남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눈물이 다시 주르륵 흐르는 순간 태동이 느껴졌다. 짧은 간격으로 또다시 느껴졌다. 하, 기분이 거지 같았다. 이렇게 거지 같은 기분으로 엄마가 되어도 괜찮은 걸까. 정말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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