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낳을 것인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당연한 소리다. 나에게 지금껏 병원이란 공간은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가는 곳이었으니까.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닌 건 임신 하고 나서가 처음이다. 임신 초기엔 2주에 한 번, 중기엔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임신 33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다시 2주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다. 산전 검사, 혈액 검사, 질 초음파, 복부 초음파, 소변 검사, 심전도 검사, 정밀 초음파, 경부 길이 체크…. 임신하고 내가 거친 검사만 해도 꼽아 보려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평생 건강한 체질로 살아온 덕분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별로 없는 편이라, 대기실에 앉아 내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자면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환자가 된 기분이 든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산부인과 고르기였다. 나와 남편은 가까운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기 심장 소리를 확인한 후, 큰 고민 없이 제주대학교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었다. 임신은 계획에 없던 이변이었고 몸도 마음도 완전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에서 가장 큰 병원을 고르는 것이 안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병원은 예약부터 쉽지 않았다. 다태아, 고령 산모, 지병이 있는 산모 등 고위험 산모가 아니고서야 임신 20주 차가 넘어야만 첫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 4개월 후에 의사를 처음 만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래도 일단 예약을 걸어 두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 병원에서의 출산 과정을 알아볼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출산을 준비할 때 관장과 제모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되는 것을 낭만적으로 꿈꾼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상상한 출산의 과정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언제인지도 모를 머나먼 옛날부터 인간이 수없이 반복해 온 행위이고, 심지어 포유류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 아니던가. 그런데 왜 아기를 낳기 전에 털을 깎고 변을 미리 빼내야 하는 걸까. 위생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관장과 제모는 아무래도 산모나 아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진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다 보니 몇 년 전 시아버지 돌아가시던 때 생각이 났다. 아버님은 오랜 암 투병 끝에 지역 대학 병원에서 마지막 눈을 감았다. 의료진은 아버님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치 끝까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인 것처럼 대했다. 이 수술만, 이 약만, 이 치료만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이 완전해질 것처럼 말했다. 이런 말을 들으며 가족들에게는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 혹은 더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다는 희망만이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기회, 달리 말해 의료진이 제시하는 모든 것을 거부할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었다. 출생과 죽음. 인생의 당연한 통과의례가 병원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제도화되었다는 생각에 닿고 나니, 대학 병원에서 제모와 관장을 마친 채 무통 주사를 맞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아기를 낳고 싶지는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국 나는 대학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분만이 가능한 제주도 내 다른 산부인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두 번째 충격. 아니, 애 낳을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없다고? 제주대학병원을 제외한 지역 종합 병원들은 더 이상 분만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제주 시내에서 아기를 받는 개인 산부인과의 수도 한 손에 꼽을 수준으로 적었다. 심지어 서귀포에는 분만 가능한 병원이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2024년 기준 전국에서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열 곳 중 한 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제주도에 신생아 중환자실 병상수가 부족해서 급히 헬기를 타고 육지에 가서 출산했다는 산모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 이것이 내가 아기를 낳고 키워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구나 싶었다.
나는 지금 개인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 산부인과에 다니고 있다. 원장 선생님이 서울에 있는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곳에서도 출산 전 제모와 관장을 받거나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있지만, 대학 병원처럼 의무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 산모의 선택에 맡긴다. 새하얀 병원 조명 대신 비교적 어둡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돕고, 자연분만과 모유 수유를 권장한다. 산모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의료적 도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곳이 최선의 산부인과라 생각하면서도, 이게 과연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이 맞는지 확신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과연 나는 어떻게 아기를 낳게 될까. 아직 자연분만할지, 제왕절개 수술로 분만을 할지, 의료적 개입 없는 자연주의 출산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완전한 자연주의 출산을 희망하고 있지만, 병원에서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대체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기의 머리 크기? 체중? 진통 여부? 내 속 골반 넓이? 출산까지 앞으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이 미지수이고, 내 배는 날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