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는 아름다움
‘이 책이 원래 어디 있었더라….’ 내 키보다 높은 책장이 양쪽 벽을 가득 채운 방 한가운데 서서, 나는 우물거리고 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헌책방 ‘집현전’. 이곳에서 나와 남편은 지난 이틀간 행사를 치렀다. 집현전이 자리한 헌책방 거리에서 열린 책 축제에 워크숍 진행자 겸 마켓 셀러로 초대받아 제주에서 인천까지 오게 된 것이다. 행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면서 물건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데, 이거 참 쉽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의 원래 자리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옮기면서 메모라도 해둘걸. 조금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행사에 섭외받고 나는 몇 주간 이번 여정을 무척 기대해 왔다.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시작한 후 수도권에 초대받은 일이 처음이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행사 주최 측에서 제공한 숙소 때문이었다. 숙소의 이름은 ‘집현전 헌책방 레지던시’. 말 그대로 헌책방 안에 마련된 작은 숙소에서 먹고, 자고,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고급 숙소도, 넓고 쾌적한 환경도 아니었지만 밤이면 불 꺼진 헌책방을 내 것처럼 누빌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그곳의 사장님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얼른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
처음 집현전 책방 앞에 도착했을 때, 양옆 건물 사이에 꽉 낀 모양이 꼭 책장에 꽂힌 두꺼운 책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폭 좁은 삼 층짜리 건물이었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면서 책방에 들어서자 수많은 책에 둘러싸인 작은 체구의 사장님이 보였다. 웃는 얼굴은 다정하지만 눈빛은 강렬한, 집안 큰 어른 느낌의 할아버지였다. 단정한 셔츠를 입고 양쪽에는 감색 체크무늬 토시를 한 모습에서 베테랑 책방 사장님의 기운이 폴폴 풍겼다. 사장님은 나와 남편에게 악수를 청했고, 짐이 많으니 바로 숙소를 보여주겠다며 2층으로 안내했다.
수많은 책장을 지나 바닥에 쌓인 책들을 피해 가며 카운터 뒤쪽으로 돌아가니, 나무로 된 계단이 나왔다. 계단 폭이 성인 한 명 겨우 오르내릴 만큼 좁고 가팔라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저절로 집중하게 됐다. 2층은 1층과 비슷한 크기였지만, 중앙을 비워두고 벽면을 따라 책장을 비치한 덕분에 훨씬 넓어 보였다. 창가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숙소로 들어가는 벽면에는 간단한 주방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밥통 옆에 있는 작은 방문을 열자, 앙증맞은 침실이 나왔다. 싱글 침대 두 개, 옷걸이, 이불과 베개, 작업용 책상, 전신 거울. 작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이곳에서 나와 남편은 3박 4일간 머무르며 2층 공간에서 축제 동안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여전히 책의 자리를 찾지 못해 혼자 서성이고 있는데, 폭 좁은 계단을 사장님, 아니 관장님이 성큼성큼 걸어 올라오신다. 집현전을 운영했던 노부부에게 이곳을 물려받기 전까지,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갤러리를 운영했던 관장님은 ‘사장님’보다 ‘관장님’이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고 했다. 관장님은 2층으로 완전히 올라오지 않고 얼굴만 살짝 내민 채 묻는다. “다 끝났어?” 사흘 만에 우리가 꽤 가깝게 느껴졌는지, 어느새 우리에게 말을 놓는 관장님. “네, 이제 막 끝나서 정리하고 있어요.” “너희들 저녁은 어떻게 먹어? 괜찮으면 오늘 마지막 날인데 저녁 같이 먹을까? 내가 여기서 해줄게.” 저녁 감으로 미리 검색해 둔 근처 식당이 있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 별말 없이 좋다고 답한다.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려는 관장님을 붙잡고 나는 서둘러 묻는다. “관장님, 그런데 이 책 원래 어디에 있었죠?” “그거 저기 너 노트북 놨던 책장에.” 관장님은 쿨하게 답하고 저벅저벅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이 수많은 책의 제자리를 모두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 혼자 속으로 감탄한다.
나와 남편은 헌책방을 좋아한다. 틈만 나면 집 근처 헌책방을 기웃거리고, 여행을 가면 그 지역 헌책방 골목을 찾아 한나절을 보낸다. 책방마다 세세한 분위기는 다르지만, 쌓여있는 책들이 우다다 쏟아져서 나를 압도할 것 같은 느낌은 모두 같다. 60억을 투자해 만들었다는 삼성역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장대함을 나는 코딱지만큼 작은 헌책방에서 느낀다. 곰팡내인지 종이 냄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온몸을 감싸는 폭폭한 냄새가 그 압도적인 느낌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헌책방에 가면 눈여겨보는 건 그곳의 사장님이다. 보통 대부분의 헌책방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데, 그 한가함과 다르게 사장님들은 항상 바쁘다. 새로 들어온 책을 닦고, 분류하고, 책장에 꽂고, 온라인 주문을 관리하느라 손님이 들어오는데 모르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들의 분주함을 보며 늘 궁금했다. 이렇게 열심히 관리한다고 해서, 이 수많은 책이 주인을 찾아갈 수 있을까? 새 책도 안 사고 안 읽는 세상이라는데 헌책이야 오죽할까. 이미 오래될 대로 오래돼서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하고 갈색 점박이가 생긴 책들은, 책장에 꽂힌 채 주인을 기다리면서도 매일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책을 사고파는 것이 책방의 쓰임이라면, 책방 사장님들의 열심이 쓸모 있긴 한 걸까. 손님의 발길이 끊긴 이곳을 여전히 최선의 마음으로 운영하는 사장님들. 그 선택이 의문스러웠다는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사장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운영하고 있을까.
오늘의 저녁 메뉴는 부대찌개인가 보다. 주방에 ‘자이언트 부대찌개 밀키트’라고 적힌 띠지를 두른 플라스틱 통이 놓여있는 걸 보고 눈치챘다. 뒷정리를 마치고, 나와 남편은 오늘의 셰프인 관장님을 도와 재료가 소 포장된 비닐을 가위로 하나씩 자른다. 새로 쌀을 안쳤는지 치익치익 밥솥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내일 바로 제주로 가는 거예요?” 머쓱했는지 갑자기 존댓말을 섞어 쓰는 관장님. “네. 내일 오후 비행기라, 아침 10시쯤에 퇴실할 거 같아요. 관장님은 내일 쉬는 날이죠?” “응. 근데 뭐, 나는 딱히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손님 없어도 여기로 와요. 나는 내일 오후에나 올 것 같네.” 관장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45년 전 처음 제주에 갔던 때의 추억을 꺼낸다. 그는 맹인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은퇴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은 곳이 제주에 있는 학교였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에서 온 젊은이를 만나다니.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라며 관장님은 신기해한다. 45년 전이면 내가 제주에 태어나기 훨씬 전인데.... 이 작은 공통점을 인연이라 볼 수 있을지 의아했지만 눈을 빛내며 옛 제주를 회상하는 관장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즐겁다.
“내가 발령을 조금 늦게 받아서 4월 9일쯤에 제주에 도착했거든. 공항 쪽으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노오랗게 유채꽃이 피어있는 거야. 진짜 예뻤어. 살면서는 더 좋았고. 근데 나중에 아내랑 다시 가서 학교 있던 곳을 찾아가 보려니까 찾을 수가 없겠더라고. 너무 변해서. 맹인 학교가 다른 학교가 됐다고 들은 거 같은데, 자리를 옮긴 거 같아.” 관장님은 수다를 떨면서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냄비에 사골육수와 양념장, 소시지와 라면 사리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팔팔 끓인 찌개 위에 노란 치즈를 한 봉지 까서 올리니, 자극적이었던 빨간 냄새가 부드럽고 먹음직스럽게 변한다. 주변을 꽉 채운 책들에 냄새가 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막상 이곳의 주인인 관장님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주인이 편안하게 행동하니, 손님인 우리도 덩달아 자연스럽게 이곳에 녹아든다.
부대찌개가 완성되고, 우리는 관장님의 지휘에 따라 식탁 위로 반찬과 접시, 수저를 나른다. 반찬은 관장님의 사모님께서 만들어다가 가져다준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각자의 접시에 갓 지은 밥과 반찬을 먹을 만큼 덜고, 국그릇에 부대찌개를 나눠 뜬다. 나와 남편은 하루 종일 행사를 진행하느라, 관장님은 주방이 있는 2층을 우리에게 내어주느라 아무도 점심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시장이 반찬인 건지, 아니면 이미 간이 다 되어있는 밀키트라 그런 건지 몰라도 맛이 아주 훌륭하다. “관장님,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집현전을 물려받게 되신 거예요? 원래 운영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특별히 관장님께 집현전 운영을 부탁했다고 들었어요.” 이미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던 질문인지, 관장님은 정돈된 옛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준다. 교직에 있으면서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관장님은 집현전 옆 건물 2층에서 인천 최초의 사진 갤러리를 운영했다. 그곳에서 매일 저녁 사진 강좌를 열고, 인천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열고, 전시회를 진행했다. 지역과 어울리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관장님을 집현전 사장님 두 분께서 무척 좋게 보신 모양이다.
“할머니가 먼저 쓰러지셨거든. 할아버지가 책방을 혼자 운영하실 수는 없었던 거고. 그래서 나를 불러다가 물려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으시더라고. 나는 그냥 감사했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지.” 감사한 마음으로 누군가 평생 해 온 일을 물려받았다는 말이 마음에 꽂힌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집현전 건물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술했다고 한다. 관장님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날 정도라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원래는 2층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림집으로 써서 올라와 볼 수가 없었어. 처음 여기 올라온 날에 마침 비가 왔는데, 바닥 여기저기에 바가지가 있는 거야. 새는 물을 받으려고. 지금은 3층을 갤러리로 쓰고 있지만, 그때는 3층이 있는 줄도 몰랐어. 다락방인 줄 알고 올라가서 철거하다 보니까 3층이 있더라니까? 하하하!”
관장님은 이 건물을 산 가격에 거의 맞먹을 만큼의 금액을 더 들여서 책방을 수리했다. 말은 수리라고 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거의 새로 지은 수준인 듯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직접하고 싶어서 목공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때는 책방을 물려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열정이 가득한 시기였다고, 지금은 그만큼의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고 관장님은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열정적인 스스로가 민망해서 짓는 웃음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열정이 내 눈에는 멋지게만 보였지만.
관장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아는 헌책방 사장님이 ‘자네, 나를 이어서 이곳을 운영해 줄 수 있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과연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제안을 수락할 수 있을까? 천장에는 물이 새고 연탄을 땠던 자국이 바닥마다 선명한, 바람이 불면 흔들릴 것 같은 목조 건물,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오래된 책들을 좋다며 물려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관장님이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히 공간과 물건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든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지만 나도 언젠가 꼭 한번 만져보고 싶은 아름다움이 세대를 넘어 이곳에 흐르고 있다. 관장님이 하루 종일 지키고 앉아 있는 카운터 뒷벽에는 이젠 돌아가신 주인 노부부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그 사진은 절대 떼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 맞다. 관장님, 제가 잠깐 찾아보니까 제주맹인학교가 지금은 제주영지학교로 바뀌었대요. 근데 그 학교가 제가 사는 곳 근처예요. 자리도 그대로인데, 주변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관장님이 못 찾으셨던 거 같아요. 다음에 제주도 오시면 저희랑 같이 가요. 저희가 안내해 드릴게요.” 내 말을 들은 관장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진다. 나는 관장님이 45년 전에 비행기에서 봤던 노란 유채꽃밭을 혼자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그와 나란히 서서 함께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