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Ko

어른의 세계

그는 저녁으로 어복쟁반을 먹자고 했다. 어스름한 초여름 저녁,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삼성역에서 만나 식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복쟁반은 내가 태어나서 외식으로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비싸고 정성스러운 메뉴였다. 이 슴슴한 국물 맛을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퇴근한 직장인들이 바글바글한 식당으로 그가 나를 처음 데려갔던 날. 국물을 한 입 입에 넣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를 보면서 그는 한없이 즐거워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때와 달랐다. 그의 표정은 한치의 다정함도 없이 무뚝뚝했다.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거스르며 말없이 걷다가, 나는 오늘이 우리가 헤어지는 날이라는 걸 직감했다. 사귄 지 1년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깍쟁이었다. 강남 8학군 출신에, 서울 구석구석의 맛집을 잘 알았고, 우울할 땐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심지어 그의 친구들마저 모두 반듯한 서울 말씨를 썼다. 우리는 회사 인턴십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사원증을 하고 있어도 그는 나에게 한참 어른 같았다. 인턴십이 끝난 후 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그는 회사의 정직원이 됐다. 그리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았다. 그만큼 취향도 아는 것도 나보다 깊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음악을 듣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말마다 나를 숨어있는 서울의 노포로, 압구정의 라이브 바로, 서래마을의 케이크 샵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와 함께 다니면서 새로운 세계를 배웠다. 이를테면 어복쟁반 같은 것들.

어복쟁반이 나왔다. 동으로 만든 무거운 냄비에 쇠고기 편육과 알배추, 버섯, 만두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사장님은 재료가 익었으니 바로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육수는 아직 미지근했다. 그 뜨뜻미지근한 온도가 마치 지금의 우리 같았다. 그즈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기 전에 그에게 보낸 메시지의 1 표시가 다음 날 점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채 며칠이 이어졌다. 만남도 서서히 줄었다. 나는 그가 나를 조금씩 떼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내가 먼저 알아서 떨어져 나가 주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헤어짐을 받아들일 시간을 나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이별을 고할 배짱이 어차피 나한테 없기도 했다.

계산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밖에 조용히 서있었다. 그도 곧 내 앞에 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 면접 어땠어?” 그가 물었다. “그냥, 처음이라 다 어색했어.” “잘 됐으면 좋겠다. 아마 잘될 거야.” 그는 마치 사촌 여동생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면접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건너는데, 창문에 비친 내가 너무 어색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친구에게 빌린 정장은 어깨에 맞지 않고,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산 저렴이 구두 때문에 뒤꿈치가 아팠다. 블라우스 겨드랑이 부분은 꽉 끼어서 답답했다. 이 불편한 하루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는 건지 막막했다. 하물며 이 면접에 붙는다 해도, 그곳이 내 자리가 맞을지 확신이 없었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그는 나에게 ‘우리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이별 통보를 받을 거라곤 까맣게 몰랐던 사람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지난 몇 주간 말하지 못한 불만과, 차이는 자의 울분과, 참아왔던 억울함을 쏟아냈다. 30분 내내 이어진 혼잣말에도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화가 길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떼쓰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을 닦았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릉역까지 걸었다. 역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제자리에 선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서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갔다. 이런 게 어른의 연애라면, 나는 어른이 되기에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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