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뚫는 이야기
아빠에 대해 쓰고 싶지만 매번 실패한다. 가족사진을 보면 아빠 입장에선 억울하겠다 싶을 정도로 나와 엄마가 똑같이 생겼는데, 만약 성격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면 판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나는 아빠와 성격 판박이다. 열 받으면 입을 꾹 닫았다가 갑자기 불처럼 화를 내는 것, 약속했으면 5분 전에는 도착해서 기다려야 마음이 놓이는 것, 뭘 좋아하다가도 금세 마음이 식어서 온갖 취미 용품만 사 모은 꼴이 되는 것,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온종일 그 생각뿐인 것까지. 세상 무엇보다 나에 대해 쓰는 것이 어려운 만큼, 아빠에 대해 쓰다 보면 가슴이 꽉 막혀온다. ‘우리 아빠 왜 저래’가 곧 ‘나 왜 이래’ 같아서. 제 얼굴에 침 뱉는 꼴 될까 봐 글을 쓰다가 결국 주저하게 된다.
DAY 1
며칠 전부터 우리 집 화장실 배수구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시중에 파는 ‘펑크린’을 몇 번에 나눠 부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심지어 세면대에서 양치하거나 부엌 싱크대에서 설거지만 해도 화장실 바닥에서 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이대로 가다간 큰 일 나겠는데 싶어 당근으로 하수구 뚫는 업체 사장님을 급히 섭외했다. 사장님은 이리저리 화장실 배수구를 살펴보더니, 아랫집인 1층에서 배관을 열어봐야겠다고 말했다. 다행이라면 1층엔 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결국 이 상황에 아빠를 개입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내가 그러하듯) 아빠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온갖 정보와 제품을 뒤질 것이다. (지금 내 기분처럼) 문제를 어영부영 파악하는 하수구 사장님을 답답해할 것이다. (지금 내가 참고 있는 것과 같은) 온갖 불안과 불만을 필터 없이 쏟아낼 것이다. 그게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득이 될까 실이 될까 알 수 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장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1층 천장 점검구를 열어 배관을 까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장님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천장의 다른 점검구를 계속 열어 재꼈고, 아빠는 사장님의 막무가내 업무 스타일을 못마땅해했다. 평생 토목 업계에 몸담아 온 아빠는 일반인보다 이런 분야에 관해 지식이 많았고, 그만큼 이거 아니냐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말을 많이 보탰다. 나는 짜증을 팍팍 티 내는 아빠를 말리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결국 상황은 최악으로 흘렀다. 오후 내내 작업이 이어졌지만 사장님은 이렇다고 할 원인을 밝히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16만 원의 작업비를 허탕에 쓰고 나서야, 당근 후기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처절한 깨달음을 얻었다.
DAY 2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날 밤 ‘하수구의 제왕’ 유튜브 채널을 보며 문제가 뭘까 고민하느라 늦게 잔 탓에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지만, 우리는 용건 없이는 서로에게 전화하지 않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컨디션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잠에서 이제 막 깬 건지, 아니면 잠에 들려는 참인지 모르겠는 피곤한 목소리로 아빠가 말했다.
“뭐하맨?”
“그냥 집에 이신디.”
“기? 내가 배관 구조 다 파악해 놨져.”
여기까지 듣고 나자 눈이 번쩍 뜨였다.
“엥 어떻게? 아니다. 나도 좀 생각해 둔 거 인. 내가 지금 내려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잠옷 위에 잠바를 걸쳤다. 허겁지겁 슬리퍼를 신는 나를 보며, 남편은 ‘또 시작이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 나와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의 변기가 막혔을 때나 새로 이사할 집을 셀프로 인테리어할 때, 문제가 생겨서 아빠와 내 성미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남편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어차피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맨발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1층 현관에 들어섰다. 메리야스에 반바지를 입고 까치집 진 머리를 긁적이며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새벽 내내 잠이 안 와서, 결국 4시에 홀로 일어나 점검구를 열어 배관 구조를 다시 살펴봤다고 했다. 아빠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플래시를 터트려가며 어두운 천장 속을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듣는데, 완전 일리 있었다. 집념이 전문성을 이기는 건가. 어제 왔던 전문가조차 파악하지 못한 배관 구조가 한눈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럼 어제 왔던 사장님은 대체 뭘 하고 간 거? 제대로 짚은 게 하나도 없네.”
우리는 입을 모아 사장님 뒷담화를 했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하수구 이물질을 빼는 3m짜리 스프링 제품을 주문했고, 나는 어젯밤에 기름 용해제를 주문해 뒀으니 배송이 오면 한 번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그제야 더 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퀭한 아빠의 얼굴이 안쓰러웠지만, 동시에 아빠가 신나 보여서 좋았다. 에너지 레벨이 맞는 동지가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눈앞에 닥친 문제가 조금은 작게 느껴졌다. 물론 집에서 샤워하는 건 여전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DAY 3
다음 날, 아빠는 돌돌 말린 기다란 스프링을 들고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우리 집 현관 앞에 나타났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장실로 성큼성큼 들어가서 바닥 배수구 안으로 스프링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스프링은 2m 가까이 들어가다가 어딘가에 막힌 듯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엔 아빠가 천천히 넣어볼 테니까, 너는 빠르게 손잡이를 돌려.”
스프링에는 360도로 돌아가는 손잡이가 있었다. 맷돌처럼 손잡이를 돌리면 반대편 스프링이 요동치면서 주변의 이물질을 포획하는 방식이었다. 아빠의 구호에 맞춰 나는 있는 힘껏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더! 더 빠르게!”
회전력에 못 이겨 손잡이가 떨어져 나올 정도로 힘주어 돌렸다. 하지만 건져 올린 스프링에는 이렇다고 할 이물질이 딸려오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그대로길래 나는 이제 그만하자고 했지만, 아빠는 ‘한 번만 더’를 열 번 정도 반복하고서야 축축한 옷차림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빠는 거실 의자에 걸터앉은 채 말했다.
“아 이거 진짜 속상하네. 머리카락 한 줌이라도 나올 줄 알아신디. 어떻게 아무것도 안 나오냐.”
나는 ‘속상하다’는 아빠의 말에 흠칫 놀랐다. 평소 아빠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건지 알 길이 없는 사람이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가 정말 해결되기 전까진 말해 주지 않아서 부담을 함께 나누거나 힘을 보탤 방법이 없었다. 연예 이슈나 동네에 새로 생긴 식당에 대해서는 하하 호호 잘만 말하는 사람이 어째서 자기 문제 앞에서는 커다란 바위처럼 입을 꾹 닫아버리고 마는지. 아빠의 입에서 ‘속상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그때가 평생 처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고작 하수구 하나 때문이라니, 어이없고 웃겼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아빠의 속상함을 나만큼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우리가 준비했던 두 가지 해결책 중 하나가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도 무척 속상한 참이었다.
아빠는 어떻게든 오늘 중에 끝장을 보자고 말했다. 내가 주문한 기름 용해제는 내일에야 도착할 듯싶었지만, 나도 그냥 그러자고 답했다. 아빠는 휴대폰 연락처를 뒤지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오랜만이우다. 집 하수구가 막혀가지고예. 고압 세척으로 확 뚫어불고 싶은디 됩니까?”
고압 세척은 우리가 설정한 최후의 보루였다. 나는 오래된 배관이 센 압력 때문에 손상되거나 1층 천장에 물난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빠는 그저 괜찮을 거라고 했다. 확신이 담긴 아빠의 말 한마디 덕분에, 그래 일단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차올랐다.
뚫었다
몇 시간 후, 엄청나게 큰 물통을 실은 트럭을 몰고 고압 세척 업체 사장님이 집 앞에 도착했다. 사장님은 배관 내시경 같은 고급 장비는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막힌 건 그냥 막힌 거니까 뚫으면 그만이라는 호쾌한 태도였다. 사장님은 막힌 배관이 어디인지 파악한 다음, 열 수 있는 배관은 죄다 열어서 고압의 물을 쏴 버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처음엔 2층 바닥 배수구에서 물을 쐈고, 그래도 뚫리지 않자 1층 천장 점검구를 열어 물을 쐈다. 단단하게 굳은 기름 덩어리가 배수구를 꽉 막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30년간 한 번도 배관 청소를 한 적이 없는 집이었다. 30년이면 거의 내 나이와 맞먹는 세월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사장님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1층 천장에서 배관을 열자 엄청난 기름 덩어리와 더러운 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 탓에 부모님 댁 벽지와 바닥이 온통 더러워졌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열린 배관 안쪽으로 물을 계속 쐈다. 15분 정도 이렇게 저렇게 씨름하던 사장님이 “뚫렸다!”는 환호를 외쳤을 때, 나와 아빠는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주변은 온통 미끄덩거리는 기름 덩어리와 구정물 천지였지만 내 속은 아주 시원했다. 아빠의 마음도 나만큼이나 뻥 뚫렸다는 것이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장님이 배관을 다시 닫고 호스를 정리하는 동안 아빠는 신나서 2층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빠가 2층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틀자, 전과 달리 천장 속 배관에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졸졸졸 들렸다. 나는 엄마에게 받은 걸레로 벽에 튄 기름과 바닥 물기를 닦아내면서 물 흐르는 소리를 음미했다. 아빠는 그새를 못 참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물 내려가는 소리 들려?” 하고 물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애초에 하수구가 막혔다고 아빠한테 말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